백운산의오늘의운세 바알신
국내 점술 시장 규모를 놓고 그간 추정이 분분했다. 한국역술인협회는 국내의 점술 시장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해 왔다.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회장은 예전 한 인터뷰에서 “철학관 등을 운영하는 역술인 30만 명에 무속인은 15만 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연평균 4천만원 수익을 올린다면 시장 규모는 2조원 안팎이다.
역술인 백운산 회장 사무실은 지하철 2호선 역삼역 6번 출구에서 가까운 건물에 있다. 백운산 회장 사무실에는 역대 대통령들과 찍은 사진과 그들로부터 받은 평통 자문위원 임명장 등이 증거물처럼 걸려 있다.
백운산 회장은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역술인 2대다. 그는 28세까지만 유영대라는 본명을 썼고, 이후로는 백운산으로 통했다.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자문위원 위촉장에도 유영대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종로 사무실에서 30년, 강남 사무실로 옮겨 25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장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역학이 미래의 80%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운산 회장은 1987년 13대 대선을 시작으로 2012년 18대 대선까지 매번 대통령 당선자를 정확히 예견해 이름을 날렸다.
성명학·관상학·풍수지리학 등 역학의 여러 분야 중 사주팔자를 중심으로 풀이하는 명리학으로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사주(四柱)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뜻한다. 조선시대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해 연월일시 각각을 두 글자로 표기했으니 합이 팔자(八字)가 된다. 예를 들어 음력 2014년 1월6일 2시30분에 태어나면 ‘갑오년, 병인월 정미일, 신축시’에 해당하므로 갑오·병인·정미·신축의 여덟 글자가 팔자가 된다. 팔자에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을 적용하고 각각의 논리를 따라 미래를 예측한다. 백만이 넘는 경우의 수에 해설이 붙으니 예측이 두리뭉술하지 않고 정교해진다.”
운세산업의 미래를 점쳐달라는 요청에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 회장은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없어지겠는가? 단언컨대 지구가 멸망한다면 몰라도, 그 이전에는 결코 운세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1990년 작고한 장강재 회장의 권유로 <한국일보>에 백운산의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일간지에 ‘오늘의 운세’가 연재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그는 <한국일보>에 이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 12년여간 백운산의 ‘오늘의 운세’ 연재를 이어가며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국역술인협회뿐만 아니라 한국역리학회 회장도 맡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주역국운 강의를 하는 등 여러 대학과 기업체에서 주역을 가르치고 있다. 작명과 택일, 운세, 궁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 ‘백운산 작명원’을 직접 운영하고도 있다.
입증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운세산업과 종교는 닮았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는 나중 문제고,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런 것에 의존한다는 현실 상 둘 다 비지니스이다. 자신의 운명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은 한 건재할 것이란 점에서도 둘은 같다.
신화는 어떨까? 대체적으로 종교에 비해 신화는 뜬 구름 잡기식 픽션이란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 종교와 운세, 신화, 무속 등은 완전 별개가 아니라 연결고리가 있다. 그것은 '제어할 수 없는 초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란 문제다.
종교와 운세, 신화 , 무속 등이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으면, 이들 가운데서 어느 하나만을 존중한다거나 경시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태어난 일시에 따라 운명과 미래가 달라진다면 산모의 부주의 혹은 사고로 인해 의료진이 개입하여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아기의 경우 산모 탓으로 혹은 사고 탓으로 운명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운세는 동양사상 일부와도 관련이 있는데, 만물을 음과 양으로 나누어 음과 양의 균형으로 보는 시각같은 것이다. 이 경우 가장 흔히 언급하는 사례가 사계절 변화나 밤과 낮의 변화 등이다. 겨울을 음으로 여름을 양으로, 밤을 음으로 낮을 양으로 보면서 양과 음이 번갈아 주고 받는 균형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 듯하게 여겨지지만, 이런 시각은 원인은 제쳐놓고 결과만을 놓고 보는 한계를 못면한다.
과학적으로 <겨울은 음'적인 속성을, 여름은 양'적인 속성을, 밤은 음'적인 속성을, 낮은 양'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 전혀 아니다. 낮과 밤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사계절 변화는 지구의 공전 때문에 반복 발생되는 현상이기에 그 각각을 음과 양으로 보는 것은 과학적 상식이 없어, 원인을 알지못한 채 결과만을 주시했던 과거인들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산신령 야훼신 알라신 제우스신 바알신
지구에서 시간을 계속 거슬러 과거로 가면 생명체가 일체 없었던 시기에 도달한다. 생겨난 최초의 생명체가 세균류로 발전한 시기가 있었다. 즉 세균류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조상이라 할 만하다. 다윈 진화론 기반의 과학에 의하면 이 세균류가 장구한 기간에 걸쳐 각종 생명체로 진화했다.
다윈 진화론 기반의 과학은 세균류가 진화를 거쳐 인간도 되었다는 것인데, 이걸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의 특징은 정교하고 질서정연한 메커니즘을 지녔다는 것. 혈액순환 등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고도의 메커니즘을 지닌 생명체가 세균 따위에서 진화되어 발전된 것이, 아무런 의도나 개입없이 전적으로 우연의 결과라는 것이 과학의 입장이다. 이러한 과학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구석공간이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억년 단위의 장구한 시간이 흘렀다 해도 '혈액순환 같은 인간 신체의 초정밀 구조가 전적으로 우연히 거듭된 진화의 결과로 생겨날 수 있겠나'란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주자연의 근본 속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서가 줄어들어 무질서로 채워진다(엔트로피 증가)는 것. 이러한 우주자연의 근본 속성에 따르면, 메커니즘이 질서정연한 생명체가 출현해선 안된다. 설사 우연에 의해 출현했다 해도 곧 없어져야 했다. 즉 생명체로 득실득실한 현재의 지구는 우주자연의 근본 속성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과학에 따르면 우주자연 자체가 소멸될 운명이다. 아득한 미래에 우주자연이 소멸된다 쳐도, 소멸 이전엔 적어도 우주자연의 속성이 차질없이 진행은 되어야 한다. 왜 우주자연의 속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생명체가 유지 번성하는 것일까?
우주적 스케일에서 봤을 때 지구에서 생명체가 유지되는 것 자체의 비중이 보잘 것 없긴 하다. 광활한 바다의 한 줌 먼지에 불과한 지구에 너무도 과분한 평가를 준 것일 수는 있다.
우연이 우연을 낳고 장구한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결과 세균이 인간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을 수용하긴 쉽지 않다. 우연설 자체(과학)로 인간 출현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존 종교 창조론의 불합리나 부당함에서 우연설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즉 우연설 자체의 설득력은 취약하지만, 그렇다고 우연설을 능가할 만한 그럴듯한 것이 어디에도 없다.
과학 우연설의 석연치 않음을 나름대로 메우려는 것이 신의 창조(창조론)이거나 도가의 ‘도’이거나 불교의 ‘공’이다. 과학과 신의 창조(창조론), 도가, 불교의 넷 중 하나에 진리는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넷은 일부가 겹쳐 사지선다가 줄어들 수는 있다.
넷 중 가장 이성적인 것은 단연 과학이다. 특히 20세기 이후 현대물리학이 성취한 성과들은 눈부시지만, 세균류가 인간으로 발전했다는 설의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과학의 장점은 인류에게 끼친 해악이 거의 없었다는 점.
과학 이외 나머지는 모두 인류에게 해악을 끼쳤다. 기독교가 가장 심했고 그 해악은 지금도 거대교회 비리나 사이비종교 양산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가나 불교도 지나치게 성행해 한 국가사회의 주류와 권력이 되었을 때 부패한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 도가, 불교의 타락은 오리지날을 제멋대로 변질시킨 후대의 부패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타락 이외에도 기독교도들이 지닌 문제는 기독교에만 갇혀 시야가 좁은 우물안개구리라는 점. 기독교에만 갇히게 되면 기독교 자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의 극히 일부(성경)를 달달 외워 자신이 기독교에 통달했다고 여긴다. 무언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역사(태동부터 발전까지)와 함께 장점과 단점을 두루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만 달달 외워 기독교의 극히 일부만 섭취하고 기독교의 역사와 단점에 눈을 감으면 기독교를 곡해하게 된다.
복음서에 예수가 이방인의 간청을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 자신의 소임은 유대인만의 구원이었다는 것. 이것이 실제 예수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복음서 저자의 예수 곡해묘사였는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다.
만약 실제 예수의 모습이 이러했다면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러운 국내 기독교인들은 ‘떡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만 실컷 들이켠 셈’이 된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예수의 이방인 홀대는 대표적 이방인인 국내 기독교인들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은 상징이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유리한 것은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상징으로 넘겨 일관성이 없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이 되어 버린다.
구약의 창세기가 사실이라 가정하면, 최초의 인간 한쌍이 믿었던 신은 같은 신이었을 것이다. 아담의 신이나 이브의 신은 같았을 테니까. 번식한 인간들이 각지로 퍼져 나가면서 언어와 문화가 달라지게 되자 신을 부르는 이름과 제식이 달라졌다.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해당 신이 오리지널한 신과 다른 신일 리는 없다.
오늘날처럼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아득한 과거에 최초의 인간 한 쌍은 신을 A라 불렀어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지역인들은 신을 각각 다르게 불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르게 불린 각각의 신이 다른 신이겠는가?
이렇게 보면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 곳곳으로 퍼져 달리 부르게 된 신의 이름, 야훼나 제우스나 알라나 바알 그리고 국내의 산신령까지 모두 같은 신일 수 있다.
어느 시점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린 신이 별개가 되어 서로 싸우게 되었다. 우리가 부르는 신은 우리편을 들고, 다른 이들이 부르는 신은 그들의 편을 든다고 생각해 서로 치고받은 것이 인류역사였다. 인간들이 자신의 세력확장이나 타종교를 견제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였다.
사실 신(산신령 알라신 제우스신 바알신 야훼신)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고, 모두 신을 믿는 인간의 오해나 망상으로 빚어진 참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