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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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룩상부르 2023. 12.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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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관측하지 않으면 전자는 파동이고 관측하면 전자는 입자'라고 양자역학은 말하고 있다. 

 

파동과 입자를 오가는 데에 있어, 사실 관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빛을 비추느냐 아니냐와 상관이 있다. 빛을 비추느냐 아니냐로 구분하면 될 일을 자꾸 관측 여부로 구분하려 하니 온갖 오해와 억측이 생긴다. 빛을 비추느냐의 여부를 관측 여부로 바꾸게 되면 일종의 괴담까지 비약이 이뤄진다.

 

미세한 전자에 빛을 비추면 파동이 입자로 바뀐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어도 못받아들일 괴담까지 되진 않는다. 전자와 광자의 충돌이 일어나 전자가 교란된 결과로 받아들이면 굳이 괴담을 떠올릴 이유도 없다. 하지만 빛을 비추느냐 여부를 관측 여부로 바꾸는 순간 괴담에다 사이비가 담 넘어가는 구렁이 마냥 자리를 잡게 된다. 분명한 것이 순식간에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실내에서 불을 끄고 이중슬릿을 향해 전자를 발사하면 전자는 파동이므로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다.

실내에서 불을 켜고 이중슬릿을 향해 전자를 발사하면 전자는 입자이므로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슬릿만 통과한다. 이 때 관측을 하든 안하든 결과는 같다.

 

전자가 파동으로 움직일지 입자로 움직일지는 불을 켜느냐 여부이지 관측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관측이란 빛을 비추는 것이라면서 불을 켜느냐 여부와 관측 여부를 같은 것으로 치환해 버리는 순간 사이비 괴담이 피어나게 된다. 이 사이비 괴담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연결시켜 미시세계의 중첩을 거시세계에 적용시켜 황당한 비약까지 해버린다. 즉 거시세계의 존재가 관측의 결과라는 것. 관측하지 않으면 존재와 비존재의 중첩상태인데, 관측하기 때문에 존재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 = 무’ 라고도 하고 ‘존재 = 비존재’라고까지 한다.

 

인간을 포함한 거시세계의 물체는 빛을 비춘다고 해서 존재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시세계의 전자는 빛을 비추게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빛과 전자의 충돌은 마치 ‘달리는 자동차와 충돌하면 인간이 받는 충격’에 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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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기이하기는 하다. 상자 속에서 독가스가 새어나오는 상태와 새어나오지 않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기에  꼼짝없이 고양이는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중첩되어져 있다. 

 

만일 상자속을 진공상태로 거대하게 만들고 상자속에 고양이가 통과할 정도의 큰 이중슬릿을 만든 뒤, 불을 끈 상태에서 고양이를 집어던지면 고양이는 양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상자 속이 진공상태라 당연히 고양이는 죽어있을 것이니 고양이의 생사 여부는 이 경우엔 아무런 논점 거리가 아니다. 이 경우의 논점 거리는 고양이의 파동성 여부 즉 양 슬릿을 동시통과하느냐 한 슬릿만 통과하느냐다.

 

진공상태가 아닌 상태 즉 공기가 있는 상태는 마치 빛을 비추는 것처럼 물체를 제한하므로 물체는 파동성을 잃는다. 암흑속 진공상태에서 고양이를 이중슬릿에 던져본 실험이 행해지지 않았기에 고양이가 양 슬릿을 동시통과할 지는 단언할 수 없고 가능성만 있다. 고양이는 안되지만 쥐는 될 수도 있고, 고양이는 되지만 호랑이는 안될 수도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고양이를 사람으로 바꿔도 똑같다. 암흑 속 진공상태에서의 거대한 이중슬릿 실험 가정도 같은데, 어린 아이는 슬릿을 동시통과하지만 성인은 동시통과가 안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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